관계가 힘이 되면 좋으련만, 짐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사명 덕분에 힘이 나면 좋겠지만, 도리어 힘이 빠질 때도 있습니다.
정채봉 시인의 「만남」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그의 인생에서 짐이 되는 만남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몇 대목만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닳아 없어질 때에는 던져 버리니까.
정채봉 시인에게도 비린내 나고 시들고 닳아버린 관계가 있었습니다.
모세에게도 그런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모세가 하나님 앞에 푸념합니다.
무슨 까닭으로 주님의 종인 저에게 이렇게 나쁜 일을 겪게 하십니까?
제가 주님 눈에 들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민수기 11장 11절, 새한글)
모세에게도 짐처럼 여겨지는 관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약속에 땅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라고 하셔서 했고, 가라고 하셔서 갔고, 만나라 하셔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눈에 비친 백성들의 모습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백성이… 각자 자기 천막 입구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여호와께서 노여움으로 뜨겁게 불타오르셨고,
모세도 기분이 나빴다.
(민수기 11장 10절, 새한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었고,
모세는 그 소리를 매일 들어야만 했습니다.
모세가 화가 난 근거에는 하나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화가 나셨습니다.
그러니 모세의 눈에 이스라엘 백성은 더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모세는 그들을 손에서 놓으려고 합니다.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 짐이 제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저에게 계속 그렇게 하시겠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 주십시오.
제가 주님 눈에 든다면, 제가 이런 나쁨 일을 겪지 않게 해 주십시오.
(민수기 11장 14-15절, 새한글)
모세가 짐이 된 관계를 청산하려 합니다.
더이상 힘이 빠지는 사명을 포기하려 합니다.
모세가 평범한 인간었기에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도 포기하고픈 관계와 사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괴로워하고 몹시 힘들어하기 시작하셨다.
‘내 영혼이 온통 괴로움에 휩싸혀 죽을 판입니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면 나에게서 이 잔이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마태복음 26장 36-38절, 새한글)
예수님에게도 십자가는 무거운 사명이었습니다.
대신 져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무게는 무겁기만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짐처럼 여겨지는 관계,
힘이 빠지는 사명이 종종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마냥,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 때가 얼마나 잦은지 모릅니다.
그때,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짐이 되는 만남도 있지만, 힘이 되는 만남도 있습니다.
저도 더이상은 힘겨웠던 적이 있습니다.
관계도 사명도 짐처럼 여겨졌고, 급기야 몸까지 망가져 입원했습니다.
한 평 남짓한 침대에서 간호사가 커튼을 가리고 나간 그 시간,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도무지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제 힘으로는 감당이 안 돼요.”
벼랑처럼 힘겨운 곳에 선 제 앞에 다가온 하나님의 응답은 사람들이었어요.
우연처럼 만난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동역자들이 모여서 목사님을 위해 매 주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혼자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던 모세에게도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힘이 되는 만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원로들 가운데서 70명을 나한테로 모이게 해라.
그들을 만남의 천막으로 데려와서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해라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을 짊어지게 할 것이다.
너 혼자서는 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민수기 11장 16절, 새한글)
혼자인 줄 알았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70명의 동역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족을 주신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요?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아시기에,
돕는 배필을 주시고, 부모를 주시고, 형제 자매를 주십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죠.
정채봉 시인의 시는 짐이 되는 만남만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힘이 되는 만남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어느 TV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우리는 나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모세도, 심지어 예수님도 혼자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손수건과 같은 누군가를 우리에게로 이끌어 오십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거지요.
힘겨운 마음으로 교회 복도를 걷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왔습니다.
"목사님, 왜 지난 주일에 교회 안 왔어요."
"내가? 나 목사야. 교회를 왜 안 와."
"근데 왜 늘 있던 거기 없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아이가 주일 3부 예배 시간마다
2층 로비를 안내하는 저에게 뛰어와 와락 안겼는데,
그날 제가 2층 로비에 없었던 겁니다.
아이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목사님 오는 주일에는 교회 꼭 나오세요.
제가 목사님 힘나시도록 꼭 안아주려고 했는데 없었잖아요.
이번 주에는 꼭 있으세요."
저는 제가 안아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통해 하나님이 저를 안아주셨던 거예요.
주일이 찾아왔고, 먼발치에서 그 아이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기 있다, 목사님.”
그러더니 뛰어와 여느 때와 같이 와락 안겼습니다.
제 귀에 “목사님 오늘도 힘내세요.”라고 말하는데, 얼마나 힘이 나던지요.
저에게 찾아온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고난주간입니다.
혹시 고난 중에 계신가요? 인생의 짐이 무거우신가요?
친히 손수건이 되셔서 우리 눈물을 닦아주신 예수님을 만나시고,
예수님이 허락하신 손수건과 같은 만남,
힘이 되는 만남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김동국 목사 드림
찬양_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