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한번 찾아 보세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평판이 좋은 사람 일곱 명을요.
성령과 지혜가 가득한 사람으로요.
우리가 그 사람들을 세워 이 일을 맡아보게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새번역)
<인사이드 아웃2>
참으로 감명깊게 본 애니메이션입니다.
컨셉부터가 어찌나 획기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영화 제목부터가 감독의 의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Inside out(안에서 밖으로).
제목 그대로, 모든 사람의 행동은 그저 나오는 게 아니예요.
한 사람의 내면에, 그 사람을 컨트롤하는 감정본부가 있다는 거죠.
감정본부에는 여러 다양한 감정들이 모여 있어요.
영화의 주인공 조이는 기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조이(기쁨이)가 라일리를 조종하면, 라일리는 즐겁고 행복합니다.
조이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라일리를 이끕니다.
누가 보더라도 모든 순간을 조이가 이끌면 좋을 것 같아요.
항상 기쁘고 즐거울 테니까요.
허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처럼 여겨지는,
슬픔이와 소심이에게도 자리를 내줘야 해요.
슬픔이 부정적이기만 할까요? 아닙니다.
슬픔이가 라일리를 이끌어야,
라일리는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내는 리더로 자랄 수 있어요.
<인사이드 아웃2>에서는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해요.
영화 속 라일리는 사춘기에 접어 들었어요.
사춘기 소녀 라일리의 감정본부에 자꾸만 불안이가 앉으려 해요.
어릴 적 감정들은 새롭게 나타난 불안이를 보며, 당황합니다.
라일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흔들리게 만드는 불안이가 싫어요.
그러나 불안이라는 감정은 잘못된 감정이 아닙니다.
영화 내내 감독이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춘기 시절에는 불안이가 감정본부 중심에 앉아야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불편했습니다.
처음에는 바랐어요. 조이가 불안이를 무찌르도록.
영화는 라일리가 다양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입니다.
라일리는 기쁘기만 해서는 안 돼요.
불안해야 미래를 두고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당황이가 본부에 앉을 때 이전과 달리 어른스러움이 생겨나고,
따분이가 본부에 앉아야 창의력도 생겨납니다.
라일리가 멋진 성인으로 자라나려면 조이만으로는 안돼요.
슬픔·불안·당황·부럽·따분이가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때론 불필요하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다양한 감정이 어우러질 때 멋지게 성장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카데미도 마찬가지예요.
라일리가 다양한 감정들의 총합이듯,
아카데미도 여러 다양한 성도들의 총합입니다.
조이처럼 이미 멋진 리더들이 교회와 아카데미에 가득하더라도
그들만으로는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그랬습니다.
물론,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미 최고의 리더였습니다.
정통 유대파인 열 두 사도들의 탁월함 때문이었을까요?
멀리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소외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사도들은 최고였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했을까요?
라일리가 다양한 감정들을 품고 받아들이듯이,
예루살렘 교회도 새롭게 들어온 헬라파 유대인 중에서
새로운 리더들을 세웁니다. 마치 불안이를 중심에 앉히듯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교회 중심에는 당연히 사도들이 앉아야지.
헬라파 리더라니, 어림도 없어.
새로 온 사람들이 서는게 말이 돼?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라일리가 멋진 성인으로 자라가듯
그들이 섰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갔습니다.
라일리는 평생 아기가 아니에요.
마냥 기쁨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불안이란 감정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자랐어요.
그래서 이제껏 주도해왔던 히브리파 리더들이 아니라,
헬라파 중에서 7명의 리더를 세웁니다.
헬라파 성도들을 품고 받아들일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리더로 그들을 세우자, 교회는 다시 부흥했습니다.
새학기에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곁에 다가온 새로운 가족들. 새로운 친구들.
그들은 결코 낯선 이들이 아니예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들입니다.
물론, 여기까지 함께한 이들은 늘 그랬든 최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학기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을 허락하셨어요.
사춘기가 된 라일리가 불안이란 감정을 받아들여야 하듯,
아니, 함께할 때 가장 아름다운 라일리가 될 수 있듯,
새학기, 조금은 낯설지도 모를 이 시기에,
서로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에게 소중한 자리를 내어주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아카데미는 홀로 세워가는 기관일 수 없습니다.
‘우리, 함께’ 만들어가는 기관입니다.
아름다운 아카데미의 성장을 위해,
우리, 함께 걸어 가지 않으시겠어요?
우리가 서로 받아들이고 함께할 때,
우리는 또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할 것입니다.
불안이를 받아들일 때 라일리가 성장하고,
스데반과 빌립, 헬라파를 받아들일 때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하듯,
우리도 서로를 사랑으로 안아주고 받아들일 때,
정말 아름다운 성장이 이곳에서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세요.
김동국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