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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국 목사 칼럼_한 사람의 힘(단종과 엄흥도 이야기)

세종, 사람을 선물로 남기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흥행 이후,
단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짙어졌습니다.
이홍위.
그는 조선 건국 이래 가장 정통성을 갖춘 세자였습니다.
성군 세종의 손자였고, 인자한 성품을 갖춘 문종의 아들이었습니다.
문종은 20년이 넘게 조선의 왕세자로 준비되었습니다.
어린 홍위는 아버지가 어떻게 왕의 면모를 갖추고 준비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거기에다 세종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어, 학사들에게 이런 저런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중, 세종이 가장 총애했던 성삼문에게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의 이 갸냘픈 혈육(홍위)을 부지 잊지 말라.
성삼문이 맡은 것은 세손 홍위였습니다.
그는 어린 단종이 경연에서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주눅이 들 때면,
그의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고 합니다.
전하. 전하의 등 뒤에는 돌아가신 대왕마마와 제가 서 있습니다. 고개를 드십시오.
성삼문은 할아버지 세종이 남긴 선물이었습니다.
세종은 아들 문종과 손자 단종이,
또 하나의 성군으로 기록되길 바라면서 많은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좋은 할아버지, 아버지를 두었을 뿐 아니라,
최고의 참모진까지 선물로 받은 조선 최고의 적통자가 단종이었습니다.

사람을 잃으면, 용기도 잃는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를 보시면 알 수 있듯이,
그의 눈빛에는 그 어떤 희망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중
그의 눈빛에서 희망이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옆에 있던 사람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12세의 나이에 즉위했지만,
3년 뒤 숙부 수양대군이 난을 일으킵니다.
왕위를 빼앗기로 상왕이라는 이름으로 창덕궁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자신을 지키던 참모진은 쓸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세종이 선물,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입니다.
그나마 지니고 있던 ‘상왕’이라는 직위도 빼앗기고
소년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짚신을 신고 광나루를 건넜습니다.
부인 정순왕후와도 떨어져야만 했습니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단종과 함께한 사람들」라는 책에는,
열 네 살 소년의 고백이 적혀 있습니다.
나에게는 수복이 없구나.
어린 그가 무너진 이유는 옆에 있던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너져 내린 이홍위가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떠납니다.

무너진 상처는 사람으로 회복된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영월 청령포는 서쪽의 육륙봉 절벽과
삼면을 에워싼 동강이 만들어 낸 자연의 섬이었습니다.
나룻배 한 척만이 출입을 허락받은 곳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룻배 한 척만 통제하면, 출입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눠서도 안 되고,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가까이 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인물이,
향리의 수장으로 불리는 호장 엄흥도였습니다.
어느 밤, 동강 건너편에 있던 엄흥도가 곡소리를 듣습니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묻어 있는 소리였습니다.
엄흥도는 서슬퍼런 울음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만류하였지만, 엄흥도는 강을 건넙니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를 보고 이홍위가 묻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영월군의 호장 엄흥도입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나에게 왔는가?
곡소리를 듣고 마음이 슬퍼서 왔습니다.
아, 내가 꿈에서 사육신을 보았는데 지금 그대를 보니 기이하도다. 마치 사육신을 보는 듯하다. 사람들이 초야에 선인이 많다더니 그대와 같이 충성스런 사람을 이르는 것이었구나.
엄흥도는 틈이 날 때 마다 몰래 강을 건너 이홍위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죽은 단종의 시신이 동강에 버려진 것은 사실입니다.
단종의 죽음 후, 엄흥도는 명령 하나를 하달 받습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엄흥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이라면, 그것이 정녕 내가 원하는 바다.
그는 강물 속에서 시신을 꺼낸 뒤, 왕의 유품을 들고,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은거 중이던 김시습을 찾아 계룡산으로 갔습니다.
단종의 유품을 그와 함께했던 사육신의 시신과 함께 두며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역사가 그를 사육신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그는 사육신의 정신이 묻어 있는 바로 그곳에,
이홍위의 마음에서만큼은 사육신 만큼의 충성심으로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수복 모두가 떠나, 아무도 옆에 없을 줄 알았으나,
한 사람 엄흥도가 이홍위 옆에 머물렀습니다.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장항준 감독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엄흥도를 만난 후부터 영화 속 단종의 눈빛도 달라졌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중
우리는 마찬가지입니다.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이 내 눈빛을 바꾸고 내 인생을 바꿉니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부모들에게 권면합니다.
세종처럼 자녀에게 사람을 선물로 주고자 준비하는 부모 되시기 바랍니다.
또, 엄흥도와 같이 자녀의 눈빛을 바꾸는 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더 나아가 그런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자녀의 길을 디자인하시길 바랍니다.
한 사람이 우리 자녀를 바꾸어낼 줄 믿습니다.
김동국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