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의 「믿음의 확신」에는
유명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갈릴레오는 이성적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다고 여겼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주장으로 인해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고,
결국 처형의 두려움 앞에서 자신의 과학적 확신을 세 번이나 번복했다고 전해집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신의 이성적 판단보다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바빙크는 이 장면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성과 과학의 힘을 강조하지만,
그것 역시 화형장 앞에서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논리는 상황과 두려움 앞에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빙크는 믿음의 확신은 전혀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사상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깊은 곳까지 뿌리내려 삶 전체를 붙드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은 어떤 위협이나 논쟁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은 우리의 가장 작은 삶의 영역까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게 사람을 붙듭니다.
실제로 종교재판 시대에 이름난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처형의 두려움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도 했지만,
이름 없는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교수형이든, 인두로 지지는 형벌이든, 십자가형이든, 화형이든
어떤 대가가 주어져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조차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바빙크는 그들의 믿음을 바라보며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믿음은 세계 전체보다 더 소중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살아가며 수많은 시험과 문제를 만납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삶에는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과 흔들림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자녀를 키우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 관계의 어려움, 건강과 미래에 대한 염려까지
부모의 마음을 흔드는 일들이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믿음이란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 한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혜를 주시고,
결국 그 시간을 지나가게 하실 것이라는 신뢰입니다.
눈앞의 현실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크게 바라보는 힘입니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지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그런데 바빙크는 이 문장을 믿음으로 다시 고백합니다.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하고,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이번 한 주도 우리 가정과 자녀들의 삶 가운데
이런 믿음의 확신이 깊이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믿음으로 굳게 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김동국 목사 올림
